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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폴 민족성 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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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기: 신전과 사제단 (1973~1977) === 1973년 민정이양위원회는 「종교시설 등록령」을 공포해 모든 신전에 등록을 의무화했다. 등록 조건은 제사를 영어로 진행하고 치안행정국의 참관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등록하지 않은 신전에서의 모임은 불법 집회로 처벌되었다. 빌베른 파가니즘 사제단 대부분은 등록을 거부했다. 1974년 칼라미 시장에서 폭탄이 터져 211명이 숨지자 민정이양위원회는 빌베른계 무장 조직 「신전 수호단」을 배후로 지목하고, 신전을 무장 저항의 거점으로 규정해 대대적인 철거에 나섰다. 이른바 「신전 정비 작전」으로 1974년부터 1976년까지 약 410곳의 신전 가운데 340곳이 불도저로 철거되었다. 체포된 사제들은 군사법정에서 반란 선동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이 가운데 186명이 구시가 광장에서 공개 처형되었다.[* 칼라미 시장 폭탄테러의 배후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신전 수호단은 관련성을 부인했고, 일부 연구자들은 당시 콘스탄티노폴에서 활동하던 특무처의 개입 가능성을 제기한다.] 같은 시기 치안행정국은 혼혈계 청년들로 「구역 자경단」을 조직해 무기를 지급했다. 자경단은 빌베른계 구역의 경계를 순찰하며 공용어 단속과 가택 수색을 도왔고, 빌베른계 무장 조직과 충돌하면서 1974~1977년 [[구역 전쟁]]으로 번졌다. 구시가와 옛 조차지 구역 사이에는 이때 콘크리트 장벽이 세워졌다. 1975년부터 1977년까지는 [[루이나 국방부 특무처|특무처]]가 이른바 「더러운 전쟁」을 벌여, 숨어서 제사를 이어가던 사제들과 빌베른어로 시를 쓰던 작가, 비밀 학교를 운영하던 교사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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